본문 바로가기
재료역학

위험도와 확률(Risk & Probability)

by adkim1 2025. 12. 23.

일상에서 위험이라는 단어는 대개 “일어날 가능성”으로 이해된다. 사고가 날 확률이 높으면 위험하고, 확률이 낮으면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이 사고방식은 직관적이지만, 구조공학의 세계로 들어오는 순간 심각한 한계를 드러낸다. 구조 안전에서 다루는 사건은 대부분 발생 확률이 매우 낮다. 교량 붕괴, 대형 건축물의 구조적 실패는 수십 년, 수백 년에 한 번 일어날까 말까 한 사건이다. 그렇다면 확률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그 위험을 작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서부터 위험과 확률의 차이를 구분해야 할 필요성이 생긴다.

 

위험도와 확률(Risk & Probability)

 

확률은 ‘얼마나 자주’, 위험은 ‘무엇이 일어나는가’다

확률은 하나의 질문에만 답한다. “이 사건이 얼마나 자주 발생할 수 있는가?” 하지만 구조 안전에서 중요한 질문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사건이 발생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가 훨씬 더 중요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경미한 균열 발생과 대규모 붕괴는 발생 확률이 같더라도 사회적 의미는 전혀 다르다. 확률은 같지만 결과의 무게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르다. 그래서 위험은 확률과 결과의 결합으로 정의된다. 즉, 위험이란 “일어날 가능성”이 아니라 “일어났을 때 감당해야 할 결과까지 포함한 개념”이다. 이 구분을 하지 않으면 구조 안전 판단은 숫자에 속기 쉬운 상태로 전락한다.

 

구조공학에서 위험은 왜 항상 ‘사회적 문제’가 되는가

구조물의 실패는 단순한 기술적 사고가 아니다. 인명 피해, 경제적 손실, 사회적 혼란과 신뢰 붕괴로 이어진다. 이 때문에 구조공학에서의 위험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항상 사회적 문제로 확장된다. 같은 실패 확률이라도 구조물의 용도에 따라 위험의 크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사람이 상주하지 않는 창고와 병원, 학교, 교량은 같은 확률 기준으로 평가될 수 없다. 이 차이를 설명하지 못하면 확률 계산은 공허해진다. 그래서 위험은 기술적 수치이면서 동시에 사회적 판단의 대상이 된다. 구조공학은 이 두 영역 사이를 잇는 역할을 맡는다.

 

신뢰도 설계는 확률을 위험으로 바꾸는 중간 단계다

신뢰도 설계는 단순히 실패 확률을 계산하는 기법이 아니다. 그 목적은 확률을 비교 가능하고 해석 가능한 형태로 바꾸는 데 있다. 신뢰도 지수는 실패 확률을 하나의 척도로 정리해 주지만, 그 자체가 위험 판단의 종착점은 아니다. 신뢰도 지수는 “이 구조는 다른 구조에 비해 어느 정도의 실패 가능성을 가지는가”를 말해줄 뿐, “그래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까지는 말해주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위험 기반 의사결정이 등장한다. 확률과 신뢰도는 위험 판단을 위한 재료이지, 결론이 아니다.

 

낮은 확률이 항상 안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구조 안전사고에서 반복되는 오류 중 하나는 낮은 확률에 대한 과신이다. “이 정도 확률이면 괜찮다”는 말은 결과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을 때 등장한다. 역사적으로 많은 대형 사고는 확률적으로는 매우 드문 사건이었다. 하지만 한 번 발생했을 때 그 결과는 사회 전체가 감당해야 할 수준이었다. 구조공학이 위험 개념을 강조하는 이유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확률이 낮다는 사실은 위험을 무시할 근거가 아니라, 위험을 더 신중하게 다뤄야 할 이유가 될 수 있다.

 

위험을 말한다는 것은 ‘선택’을 말하는 것이다

위험을 정의한다는 것은 사실상 선택의 문제다. 어떤 위험을 받아들이고, 어떤 위험은 용납하지 않을 것인가. 이 선택은 기술자가 혼자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구조공학은 확률과 결과를 정량화함으로써 이 선택이 감정이나 공포가 아니라 합리적인 기준 위에서 이루어지도록 돕는다. 하지만 최종적인 허용 여부는 사회적 합의의 영역에 속한다. 위험은 계산되는 대상이면서 동시에 책임이 따르는 판단의 대상이다.

 

구조 안전에서 위험 개념이 필요한 진짜 이유

만약 구조 안전을 확률로만 설명하려 한다면, 우리는 결국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모든 것을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설계하거나, 아니면 낮은 확률을 이유로 위험을 방치하는 것이다. 위험 개념은 이 두 극단을 피하기 위한 도구다. 확률과 결과를 함께 보게 함으로써 어디에서 기다리고, 어디에서 개입해야 하는지를 판단하게 만든다. 현대 구조공학에서 안전이란 “사고가 없었다”는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어떤 위험을 이해했고, 그 위험에 대해 어떤 선택을 했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상태다. 위험도와 확률을 구분해서 이해하는 순간, 구조 안전은 단순한 계산 문제가 아니라 책임 있는 의사결정의 문제로 바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