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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역학

지진 설계에서 연성(Ductility)은 왜 핵심인가

by adkim1 2026. 1. 30.

연성은 구조물이 선택할 수 있는 ‘망가지는 방식’이다

연성이라는 개념은 종종 재료의 성질로만 이해되지만, 지진 설계에서의 연성은 구조물이 극한 상황에서 어떤 방식으로 변형을 허용하는지를 의미한다. 지진은 구조물에 설계 하중을 훨씬 넘어서는 요구를 순간적으로 부과할 수 있으며, 이때 구조물이 모든 하중을 탄성으로 버티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연성은 구조물이 일정 수준 이상의 하중에서 소성 변형을 허용함으로써 파괴를 지연시키는 능력이며, 이는 구조물이 ‘안 망가지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예측 가능하게 망가지는 것’을 선택한다는 뜻이다.

 

지진 설계에서 연성(Ductility)은 왜 핵심인가

 

강한 구조가 반드시 안전한 구조는 아니다

직관적으로는 더 강하고 단단한 구조가 지진에 유리할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지나치게 강성이 큰 구조는 지진 가속을 그대로 받아 큰 관성력을 만들어내고, 이 힘을 흡수할 여유 없이 갑작스러운 취성 파괴로 이어질 수 있다. 반대로 연성이 확보된 구조는 일부 부재가 먼저 소성 변형을 일으켜 에너지를 흡수하고, 전체 구조의 붕괴를 늦춘다. 지진 설계에서 연성은 약함의 상징이 아니라, 에너지를 다루는 전략이다.

 

 

연성은 지진 에너지를 ‘힘’이 아니라 ‘변형’으로 바꾼다

지진의 본질은 에너지 입력이며, 구조물은 이 에너지를 저장하거나 소산해야 한다. 연성 구조는 지진 에너지를 큰 힘으로 받아내는 대신, 반복적인 소성 변형을 통해 분산·소산 시킨다. 이 과정에서 형성되는 소성 힌지는 구조물의 약점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에너지를 흡수하도록 설계된 장치에 가깝다. 연성 설계는 구조물에 “어디에서 먼저 변형이 일어나야 하는가”를 미리 정해 주는 작업이며, 이는 지진 거동을 통제 가능한 범위로 묶는 핵심 수단이다.

 

 

연성이 부족하면 파괴는 예고 없이 찾아온다

연성이 낮은 구조물의 가장 큰 위험은 파괴가 갑작스럽고 경고 없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취성 파괴는 변형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순간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구조물 내부에 에너지를 흡수할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는다. 실제 지진 피해 사례에서 인명 피해가 컸던 구조물들은 대부분 연성 확보가 부족했거나, 연성이 발휘되기 전에 취성 파괴가 발생한 경우다. 연성은 구조물이 스스로 위험 신호를 만들어내는 능력이며, 이 신호가 존재할 때 구조물은 ‘한 번 더 버틸 시간’을 얻는다.

 

 

연성 설계는 계산이 아니라 ‘의도’를 담는 설계다

연성은 단일한 수치로 자동 확보되지 않는다. 부재의 배치, 강도 비율, 접합부 상세, 파괴 순서에 대한 의도가 함께 담겨야 한다. 어느 부재가 먼저 항복해야 하고, 어느 부재는 끝까지 버텨야 하는지를 명확히 하지 않으면 연성은 구조 전체로 퍼지지 않는다. 지진 설계에서 연성이 핵심이라는 말은, 구조물이 극한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를 설계자가 미리 결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결국 연성이란 구조물이 지진과 맞서 싸우는 방식이며, 이를 이해하는 순간 지진 설계는 단순한 내진 계산을 넘어 ‘거동을 설계하는 기술’로 확장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