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61 허용 손상(Damage Acceptance) 구조 설계를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 “일부러 망가지는 구조”라는 말은 직관에 반한다. 보통 우리는 구조물이 손상 없이 버티는 것을 이상적인 상태로 생각한다. 하지만 지진이나 대형 충격 같은 극한 상황에서는 아무런 손상도 없이 버틴다는 가정 자체가 비현실적이다. 성능기반 설계가 받아들인 중요한 전제는 이것이다. 구조물은 언젠가 반드시 손상되며, 문제는 손상 여부가 아니라 손상의 위치와 순서, 그리고 그 결과다. 허용 손상이라는 개념은 이 불가피한 손상을 통제 가능한 영역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사고방식이다. 허용 손상의 핵심은 선택이다. 구조물 전체가 무작위로 망가지는 대신, 설계자가 의도한 부위에서 먼저 손상이 발생하도록 유도한다. 이 부위는 구조 전체의 안정성에 치명적이지 않으며, 교체나 보수가 상대적.. 2025. 12. 17. 성능기반 설계(Performance-Based Design) 구조 설계에서 오랫동안 지배적이었던 질문은 단 하나였다. “이 구조물은 주어진 하중을 견딜 수 있는가?” 이 질문은 단순하고 명확하지만, 현실을 모두 담아내지는 못한다. 지진, 폭풍, 충돌 같은 극단적 상황에서 구조물은 설계자가 가정한 하중을 훨씬 넘어서는 조건에 노출되며, 그 순간 구조는 더 이상 ‘견디느냐 못 견디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상태로 남느냐의 문제에 직면한다. 성능기반 설계는 바로 이 지점에서 등장한 사고방식이다. 즉, 구조물을 단순한 저항체가 아니라 상황에 따라 다른 행동을 보이는 시스템으로 바라보는 관점이다. 기존의 설계 방식은 안전율이라는 숫자로 모든 것을 정리하려 했다. 하중에 일정 배수를 곱해도 버티면 안전, 아니면 위험이라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 접근법은 구조물이 실제로.. 2025. 12. 16. 구조 복원력(Resilience) 지진이 지나간 뒤의 풍경을 떠올려보자. 완전히 붕괴된 건물도 있지만, 겉보기에는 멀쩡해 보이면서도 출입이 통제된 건물도 있다. 반대로 벽에 균열이 조금 생겼을 뿐인데, 며칠 후 다시 사용되는 건물도 있다. 이 차이를 만드는 개념이 바로 구조 복원력(Resilience)이다. 복원력은 단순히 “강해서 안 무너졌다”는 뜻이 아니다. 그보다는 손상을 받아도 기능을 유지하거나, 빠르게 회복할 수 있는 능력에 가깝다. 즉, 재난 이후의 시간을 포함해서 구조를 바라보는 관점이다. 전통적인 구조 설계는 오랫동안 하나의 질문에 집중해 왔다. “이 구조물은 최대 하중을 견딜 수 있는가?” 하지만 현대 공학은 그 질문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걸 깨달았다. 지진처럼 극단적인 사건에서는 ‘견디는 것’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생긴다... 2025. 12. 16. 에너지 흡수 구조(Energy Dissipation System) 지진이나 강풍 같은 동적 하중이 건물을 흔들 때, 그 힘은 단순한 “변형”이 아니라 에너지의 흐름이다. 지반이 흔들릴 때 전달되는 에너지는 건물 전체로 퍼져 나가며, 기둥, 보, 접합부를 통해 계속 이동한다. 이 에너지가 구조 내부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면 결국 응력 집중이 일어나고, 그곳에서 균열이 생기고 파손이 시작된다. 그래서 내진 설계의 핵심은 단순히 강도를 높이는 게 아니라, 그 에너지가 흘러가서 사라질 길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 철학의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에너지 흡수 구조(Energy Dissipation System)다. 에너지 흡수 구조는 이름 그대로, 지진이 발생했을 때 구조물 내부에 유입되는 진동 에너지를 의도적으로 흡수하고 소멸시키는 구조적 장치다. 쉽게 말해, 건물이 흔들릴 .. 2025. 12. 16. 베이스 아이솔레이션(Base Isolation) 건물이 흔들리지 않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뭘까? 아마 대부분은 “더 단단하게 짓는 것”이라고 답할 것이다. 그런데 지진공학에서 그 답은 정반대다. 단단한 건물은 오히려 지진에 더 약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땅이 흔들릴 때, 단단한 구조물은 그 움직임을 그대로 흡수하지 못하고 ‘충격’을 그대로 받아버리기 때문이다. 지반이 한 번 휘청일 때마다 건물 전체가 뿌리째 흔들리게 되는 것이다. 강한 재료로 만든 건물이 무너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강도는 높지만 유연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대의 내진 설계는 ‘버티는 기술’에서 ‘움직임을 조절하는 기술’로 바뀌었다. 그 대표적인 해법이 바로 베이스 아이솔레이션(Base Isolation), 즉 면진(免震) 이다. 면진 구조의 원리는 단순하다. 건물을.. 2025. 12. 15. 지진 해석(Seismic Analysis) 지진이 일어날 때 구조물이 받는 힘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생각하는 “하중”과는 완전히 다르다. 지진은 위에서 누르거나 옆에서 미는 단순한 힘이 아니라, 땅 자체가 구조물을 흔드는 가속도의 파동이다. 즉, 하중이 아니라 “운동”이 구조에 전달되는 것이다. 그래서 지진 해석은 단순히 ‘얼마나 강한 건물이냐’가 아니라 ‘얼마나 잘 따라 흔들리며, 흔들리면서도 무너지지 않느냐’를 이해하는 과정이다. 건물이 흔들린다는 건, 사실 그 밑의 땅이 먼저 흔들린다는 뜻이다. 지반은 지진파가 지나갈 때 일종의 진동 신호를 전달하는데, 이 신호는 건물의 기초를 통해 그대로 상부 구조로 전달된다. 결국 건물은 “지반의 진동 이력”을 따라 반응하는 하나의 동적 시스템이 된다. 여기서 중요한 건, 건물이 지반의 움직임과 동시에.. 2025. 12. 15. 이전 1 ··· 4 5 6 7 8 9 10 11 다음